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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마음속에 다락방 하나 정도는 있는 법이잖아요
앨범의 프로듀서 단편선은 보일의 《나쁜 마음》 크라우드 펀딩 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작업기를 남겼어요. “가라앉아 있는 음악을 설명하긴 어렵다. 설명을 할 수는 있지만,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근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제가 바로 그 피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됐네요? (웃음)
가라앉아 있는 음악을 설명하기는 어려워요. (←reprise) 누구나 마음의 다락방이 있잖아요. 하지만 아무도 그곳에 자주 들르거나 머무르려 하지 않죠. 오랫동안 방치하는 경우도 있고요. 보일의 《나쁜 마음》은 마음의 다락방 문을 살짝 열어 둔 뒤 그곳에 놀러 오라 쪽지 보내는 음반입니다.
앨범의 타이틀이자 타이틀곡인 〈나쁜 마음〉을 들어 보죠. 상대의 사랑을 갈구하는 이야기를 〈나쁜 마음〉이라는 제목으로 나른하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너는 나를 이해할 필요는 없고 그냥 나를 사랑하면 돼”. 여기서 나쁜 마음이란 뭘까요? 이해 없는 사랑을 추구하는 것? 상대에게 일방적인 사랑을 강요하는 것? 〈나쁜 마음〉은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완만하게 상승하다 급하게 내려앉는 사운드와 함께 마지막 가사를 뱉습니다. “사랑이란 가소롭다고 / 내가 말할 차례였는데 / 주도권을 가진 기분은 / 어때 생각보다 괜찮지” 아아… 그렇군요. 이건 체념의 정서입니다. 〈나쁜 마음〉은 체념하는 마음이에요.
체념의 정서는 앨범 곳곳에서 묻어납니다. “내 마음은 방수가 되지 않”고 “조각 조각 없어”짐에도 불구하고 “편리하다 / 괜찮다고 생각”하고요. “결말은 더이상 궁금하지 않아” 합니다. 그리고 인스트루먼틀인 앨범의 마지막 곡 〈다음에는〉에 붙은 코멘트는 "다음은 없었으면서"이고요. 〈나쁜 마음〉이 체념이라는 걸 알아챈 순간 저는 더 설명하기 어려워집니다. 손을 뻗어 음악을 건드리는 순간 흙탕물이 되어버린 어항처럼 설명이 앨범의 아름다움을 망쳐버릴 것 같거든요.
《나쁜 마음》이 아름다운 건 가라앉아 있는 나쁜 마음을 사운드를 통해 훌륭하게 직조해냈기 때문입니다. 제가 만드는 일렉트로닉 음악에선 대개 ’직조’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지만 이 앨범에서 발견되는 각 요소의 어우러짐은 확실히 직조에 가까워 보여요. 가로와 세로라는 서로의 방향을 확실하게 지키면서 어우러졌을 때 하나의 면으로 보이게 하는 거죠.
앨범의 장르는, 통칭하자면 앰비언트 팝 정도가 될 테지만 세세히 파고들면 좀 복잡해요. 〈Park〉는 90년대 가요의 향취도 갖고 있고요, 〈나쁜 마음〉은 허민(=퍼스트 에이드)의 뉴에이지적 다이내믹 신시사이저 사운드가 돋보이는 곡이에요. 〈0〉은 브라질 음악에서 영향받은 포크고요. 로파이 힙합 채널에서 들어봤을 법한 다운 템포 〈살구〉도 있습니다. 굳이 장르명을 열거하자면 재즈, 앰비언트, 다운템포, 포크 등이 적절한 자리에서 어우러져 있는 앨범이에요.
참여한 사람들의 영향이 보입니다. 경계를 넘나드는 포크 / 록 음악을 만들던 단편선, 정글, 드럼&베이스부터 디스코, 앰비언트 팝 등 역시 다양한 장르를 다양한 색으로 들려준 룸306의 허민이 앨범의 프로듀서로 보일과 함께했거든요. 앨범의 프로덕션을 총괄한 오소리웍스를 통해 자신의 작업을 발표하고 있는 포크 싱어송라이터 천용성, 그리고 주목받고 있는 재즈 베이시스트 정수민 등도 눈에 띄는 이름입니다. 프로듀서가 세 명이나 되면 사공 많은 배처럼 산으로 갈 법도 한데 그렇지 않은 건 이 음반이 가라앉아 있기 때문일 거예요. 가라앉아 있는 건 힘이 세거든요. 누구나 마음속에 다락방 하나 정도는 있는 법이잖아요?
10분이 넘어가는 느릿한 앰비언트 〈다음에는〉으로 《나쁜 마음》의 여행은 끝이 납니다. 앨범을 다락방에 비유했으니 계속 이어가 볼게요. 처음 다락방에 들어가면 먼지만 풀풀 날립니다. 그다음에 들어가면 방의 구조가 보이기 시작하고요. 세 번째 들어가면 가구가 보여요. 나중엔 가구 안에 숨겨진 마음의 조각을 살펴보고 싶어집니다.
《나쁜 마음》은 다락방의 문을 아주 살짝 열어 놓은 앨범이에요. 방에 여러 번 들어가 호기심을 갖고 기억을 꺼내는 건 여러분의 몫이라는 얘기입니다. 다락방에 들어가고 싶지 않을 수도, 들어가 굳이 기억을 꺼내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 역시 당신인걸요. 《나쁜 마음》과 함께 당신의 나쁜 마음을 만나 보세요. 마음에 붙은 수식처럼 꼭 나쁜 경험은 아닐 겁니다.
― 하박국 / 영기획 YOUNG,GIFTED&WACK Records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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